그날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기운이 빠져 있었다. 이유를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뭔가 하나가 틀어지면 연달아 모든 게 어긋나는 날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하면 그날이 딱 그랬다. 어머니 생일이라 괜히 더 잘해드리고 싶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게다가 괜히 기분 이상하게 운전하다가 우연히 스치듯이 보게 된 건데 차 한 대가 반대 방향으로 돌려진 채 사고가 나 있는 광경을 보며 지나가게 되었다 마치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한 징조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나에게 현실이 되.었.다.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하루
점심부터 꼬였다. 더운 여름날, 차 안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어머니 기다리던 그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솔직히 그때 내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위가 안 좋아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약속이 취소됐다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버텼던 게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순간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아, 오늘 뭔가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사실 그 느낌, 무시하면 안 되는 건데 그땐 그냥 넘겼다.
도서관 가는 길에 사고 현장을 봤다. 차가 이상하게 서 있었고, 도로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그냥 지나치면서도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그런 장면 하나가 하루 전체를 예고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도서관에 도착했는데도 시원하지도 않고,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몸도 마음도 다 어정쩡한 상태였다.
결정적인 선택 하나
저녁이 되고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길,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피곤한 하루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굳이, 정말 굳이 내비를 켰다. 평소 가던 길이 아니라 좁은 골목으로 안내를 해주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익숙한 길을 놔두고 굳이 낯선 길로 들어간 선택.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골목은 좁았고, 경사까지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차와 딱 마주쳤다. 서로 비켜가기 애매한 상황. 그때 나는 당황했다. 솔직히 말하면 판단을 제대로 못 했다.
상대 차가 내 옆에 거의 붙어서 내려오는데, 그걸 ‘못 지나간다’고 단정해버리고 그냥 후진을 해버렸다. 그 짧은 순간의 판단 하나가 결국 접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창문이 내려가면서 첫 마디가 날아왔다. “운전 미숙이냐?”
그 한마디가 모든 걸 터뜨렸다.
사고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감정
사실 사고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정말 가벼운 접촉이었다. 근데 그 이후 상황이 문제였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격해지고, 결국은 누가 더 밀어붙이느냐 싸움이 돼버렸다.
“그때 내가 왜 한마디를 못 했을까?”
지금도 그 생각이 남는다. 상대가 지나갈 수 있었는지, 아니면 내가 정말 잘못한 건지 그걸 물어봤어야 했다. 그런데 그 분위기에서 그걸 물어볼 용기가 안 났다. 당황함, 짜증, 자존심.
이 세 가지가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 같다.
10만 원보다 더 큰 대가
결국은 어이없게 마무리됐다. 상대는 블랙박스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말로만 밀어붙였다. 나는 지쳤고, 그냥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10만 원으로 끝났는데, 이상하게 돈보다 더 크게 남은 게 있었다.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했지?’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이후로 꽤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
신기하게도 이후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더 겪었다. 같은 각도, 같은 거리. 그런데 그때는 알겠더라. 그 상황, 사실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다는 걸.
그걸 깨닫는 순간 묘하게 속이 풀렸다. 억울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몰라서 당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날의 교훈은 하나였다. 순간의 감정 때문에 궁금증을 남기지 말 것. 그게 나를 더 오래 괴롭힌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더 웃긴 게 머냐하면 그 일에서 아주 깊숙하게 뿌리박고 있는 본질을 알게 되니 실제로는 내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나오곤 했었던 실수와 관습, 내가 나 스스로도 몰랐던 그게 진짜 원인이라는 걸 알고는 내가 그걸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본질을 한 쪽 구석으로 제쳐둔 채 그저 상대가 기분 나쁘게만 말한다는 껍데기만 붙잡고 앉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