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는 크고 작은 걸 떠나서,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고 자체보다도 “그때 왜 그렇게 했지?”라는 생각이 더 크게 남는다. 나 역시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 장면은 흐릿해지는데, 내가 했던 선택 하나는 계속 또렷하게 떠올랐다. 결국 후회는 사고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 행동에서 시작됐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한 순간
사고가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때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상대 차가 바로 옆까지 붙어왔고, 그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상대가 창문을 내리고 말을 던졌을 때, 나는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정리가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한마디만 했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지나갈 수 있는 거 맞나요?”
이 질문 하나를 못 했다. 그게 아직도 제일 아쉽다. 왠지 이 질문을 했다가는 상대의 짖궂은 성질로 보아서는 더 쎄게 심하게 나를 다그칠 것 같아서 괜히 질문하는 거 자체가 비굴하게 느껴지고 모욕적이란 생각에 자동으로 회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문은 똑바로 제대로 해야 하는 게 맞다. 왜냐면 회피하고 딴 데로 질문을 돌렸다가는 상대는 내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기에 이르기에.

분위기에 눌려버린 선택
사고 현장은 생각보다 감정이 빠르게 격해진다. 특히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더 그렇다. 그날도 그랬다. 말투 하나, 표정 하나가 사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 분위기에 눌렸다. 상대의 공격적인 말투, 빠르게 몰아붙이는 태도, 주변 시선에 대한 부담.
이 세 가지가 겹치니까 판단이 흐려졌다. 원래라면 따져봤을 상황도 그냥 넘어가게 됐다. 그때는 ‘빨리 끝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게 뭔지 아나? 모든 일이 끝나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지난 나중에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그 모든 이해 안되는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라는 거다. 그래서 감정으로 엮였다면 감정이라는 것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확인하지 않고 넘겨버린 것들
가장 큰 후회는, 확인해야 할 걸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블랙박스 얘기가 나왔는데도 끝까지 제대로 확인을 못 했다. 상대는 말로만 밀어붙였고, 나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던 사람이 왜 증거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때 한 번만 더 확인했어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결국 나는 그냥 넘어갔다. 금액도 크지 않았고, 더 싸우는 게 피곤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그 선택이 오히려 더 오래 나를 괴롭혔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계속 그 장면이 반복됐다.
“내가 진짜 잘못한 게 맞나?”
이 질문이 계속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
이후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더 겪으면서 하나씩 알게 됐다. 그때 그 상황, 충분히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걸.
그리고 확실히 느꼈다. 사고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확인하느냐’라는 걸.
궁금증을 남긴 채 끝내면, 그건 사고가 아니라 기억이 된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명확하게 끝내지 않으면, 그 상황은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지금은 기준이 하나 생겼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확인한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서로 지나갈 수 있었는지, 증거가 있는지.
이 세 가지는 무조건 짚고 넘어간다. 그때는 귀찮고 힘들어도, 나중을 생각하면 그게 훨씬 낫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나를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딱 하나만 바꾸고 싶다. 감정 말고, 질문을 했어야 했다. 그 한 가지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남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쓸데기없는? 말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그렇게 한동안 성가시고 짜증나는 자극들이 결국은 내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는 없어서는 안되는 거라는 걸 알게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