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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시작부터 좀 이상했다

접촉사고 그후 2026. 4. 3. 22:42

이상하게 하루가 꼬일 때가 있다. 하나가 틀어지면 줄줄이 다 어긋나는 날. 그날이 딱 그랬다. 어머니 생일이었고, 평소처럼 내가 차를 몰고 픽업해서 저녁을 먹으려던 날이었다. 그런데 점심 약속부터 어그러졌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 틀어놓고 차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은 그대로 허공에 날아갔고, 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기분은 바닥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부터 이미 모든 게 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순간

문제는 저녁에 시작됐다. 내비게이션을 괜히 켰던 게 화근이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좁은 골목길로 안내를 해버렸다. 양옆은 차로 꽉 막혀 있고, 경사까지 있는 길. 거기서 내려오는 차 한 대랑 딱 마주쳤다.

그 순간 공기가 묘하게 싸해졌다. 서로 지나갈 수 있을지 애매한 거리. 그런데 나는 그걸 “못 지나간다”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후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몇 초가 모든 걸 갈랐다.

접촉된 두 차량

사고보다 더 남는 건 말 한마디였다

차가 멈추고 창문이 내려가자마자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운전 미숙이냐?”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사고 자체는 사실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의 말투, 표정, 태도 이런 게 더 크게 박힌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올라가고, 결국 상황은 점점 꼬여갔다. 나도 솔직히 그때 냉정하지 못했다.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보질 못했다. 괜히 더 무시당할 것 같아서, 더 공격당할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그때 그냥 물어봤어야 했다. 지나갈 수 있었냐고.”

내가 진짜 후회한 건 딱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존심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었다. ‘궁금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게 전부였다. 지나갈 수 있었는지 내가 왜 움직였는지 상대는 어떤 판단이었는지 이걸 그 자리에서 확인했어야 했다. 그걸 못 하고 넘어가니까, 사고는 끝났는데 머릿속은 계속 반복된다. “내가 잘못한 건가?” “그때 가만히 있었어야 했나?” 이 생각이 몇 날 며칠을 따라다닌다. 그 뿐만이 아니었던게 상대방 차량의 차주가 하필이면 심술궂고 성격 얄궂고 고약한 심보를 지닌 치졸한 인간이라서 말을 막 상스럽게 함부로 지껄여댔다. 그런데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사람 앞에서 과연 내가 궁금하거나 의문인 점을 물어볼 이가 몇이나 될까? 궁금한걸 물어보아봤자 그런걸 오히려 약점으로 잡아서 더 쎄게 심하게 모욕하고 까내리고 고성을 질러대며 욕설을 할 게 뻔한데 말이다.

이후에 운전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봤다. 신기하게도 그 위치, 그 각도에서도 차는 충분히 지나가더라. 그걸 몇 번이나 직접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그때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는 걸.

그걸 깨닫는 순간 묘하게 시원했다. 억울함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 물론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적어도 “왜 그런 말을 들었는지”에 대한 답은 찾은 셈이었다.

접촉사고 후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결국 정리하면 이거다.

사고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남기지 않는 것.

감정에 눌려서, 분위기에 눌려서, 혹은 괜히 쫄아서 묻지 못하면 그 대가는 생각보다 오래 간다. 순간은 피할 수 있어도, 그 뒤에 남는 찝찝함은 훨씬 더 길다.

나처럼 나중에 혼자 시뮬레이션 돌리고, 데이터 쌓고, 머릿속에서 수십 번 되감기 할 필요 없다. 그 자리에서 한마디만 하면 된다.

“지금 이거, 지나갈 수 있는 상황 맞나요?”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하는 말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이고 비난의 정도가 열라 쩔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 모욕을 받는 편보다 차라리 더 괴상하고 요상한 비난을 듣는 편보다 시간 지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데이터를 얻어서 그 궁금증을 해소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세상에 그 어디에도 누군가로부터 공개 망신을 당하거나 당당하게 까이는 걸 즐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